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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딸랑~’
은회색의 스프라이트 정장에 부드러운 핑크빛 넥타이를 매고 까만 사각뿔테안경으로 멋을 낸 그는
아침 회의가 없는 느긋한 아침이면 스타벅스에 들러 화이트초콜릿 모카 한 잔을 주문하곤 했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달콤한 생크림과 조화를 이뤄내는 화이트초콜릿 모카는 자칫 중후하게만 보이는
그의 이미지를 로맨틱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무도 모르지만 늘 자신만의 지정석이었던 창가 첫 번째 자리에는 딱 보기에도 닭살스런 커플이 함께
밤을 보내고 쾡한 몰골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휴~’
하는 수 없이 그는 맨 끝자리면서 반대편에서 볼 때 제일 첫 번째가 되는 그 자리에 앉기로 했다.
그는 PDA를 꺼내 오늘 만나야 할 고객들의 스케줄을 확인하면서 가끔 혼잣말을 내뱉다가
주위의 시선이 느껴질 때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듯 헛기침으로 중얼거림을 감추었다.
‘딩동’
커피를 거의 다 마셔갈 즈음 회사 동료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배달되었다.
‘oo씨, 부장님께서 찾으세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는 듯 하던 그는 컵을 다시 내려놓더니 구두에 묻은 담뱃재을 발견하고는
긴 허리를 굽혀 세심한 손길로 얼룩을 지우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놈의 부장.... 내가 없는 건 귀신같이 알아요. 으휴~’
기껏 빠른 걸음을 재촉하며 달려왔건만 부장은 며칠 전부터 야근까지 해가며 마무리한 서류들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쓰레기통으로 처박았다.
‘노처녀 히스테리는 여전하군.’
부장의 잔소리는 유리 긁는 마찰음처럼 싫었지만 그녀의 잘빠진 다리는 고개 숙인 그에게 참 좋은 눈요기 감이었다.
그는 그녀를 잘 알았다.
그는 그녀가 화내는 이유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평범한 남자였다.
남들처럼 일을 하고, 이자가 높은 제3금융권에 약간의 돈을 저축하고, 적립식 펀드를 하며,
웰빙에도 관심이 있고, 일주일에 3번 정도는 헬스장을 들락거리며,
스트레스 받은 날이면 친구를 불러내어 술도 한잔하고, 가끔 바에서 만난 여자와 하룻밤의 쾌락을 즐기기도 하는,
그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였다.
그는 이 회사에 입사하기로 마음먹기 전에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이었다.
사방에 둘러싸인 벽과 그 벽 사이에 꽉 낀 책상, 그리고 그가 누울 수 있는 자리.
그게 그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였다.
그는 꽉 막힌 방이 싫었다.
흰 백지에 꽉 찬 검은 글자들이 싫었다.
가끔 그는 입고 있던 옷, 그 마저도 자신을 구속하는 것 같았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이곳에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본능적인 것이었다.
이곳은 방과 방사이가 너무 얇았고 낡았다.
늦은 밤,
방마다 켜놓은 스탠드의 잔 불빛이 문틈으로 새어나오듯 그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는 어스름 달빛이 보름이 되는 날을 피해 산책을 나오곤 했다.
밤 시간대의 놀이터는 지나가는 행인과 분리되어 조용히 산책하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아주 가끔 조숙한 학생들이 모여 세상사를 논하고 있을 때를 빼면 흠잡을 곳 없는 최적의 장소였다.
주변에 인기척이 없는 지 확인 작업을 끝낸 그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자유가 너무 달콤했다. 귀뚜라미 소리가 간간히 귓가에 들려오는 듯 했다.
‘흐읍~’
‘후~’
‘흐읍~’
‘후~’
‘흐읍~’
‘후~’
‘흐읍~’
‘후~’
‘흐읍~’
‘후~~~~우’
긴 날숨과 함께 달콤한 행복도 몽땅 빠져 나가버리는 듯 했다.
‘아~ 이런 느낌은 정말....’
“삐익~ 삐익~”
감동의 눈물을 흘릴 새도 없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호루라기 소리에 놀란 나는 황급히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봐요~ 아저씨, 여기서 이러면 안 되죠~ 참~나, 말짱하게 생긴 분이 참~”
“아~ 예... 죄송합니다. 너무 급한 나머지.....”
경비아저씨가 들고 있던 손전등의 불빛이 멀찍이 사라져 갈 즈음,
난 한숨을 푹푹 쉬면서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그것을 다시 꺼내들고 달을 보며 길게 숨을 들여 마셨다.
‘흐읍~’
‘후~’
“삐익~ 삐익~”
“여봐요~!!!”
그는 쫓아오는 경비아저씨를 보고는 막 피기 시작한 아까운 장초를 던지고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담배도 맘대로 못 피는 세상, 정말 못 살겠네~”
얼마 후 그는 담배를 마음대로 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담배제조회사에 취직하였고
지금 그곳에 서서 부장의 히스테릭한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것봐요. ooo씨~“
“아무리 여기가 담배 만드는 곳이라지만 일은 해야 할 것 아니예요~.
허구헌날 담배만 끼고 살면 누가 좋아해요?”
그는 그저 평범한 남자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괴롭힌다.
그녀가 나를 구속하려한다.
‘젠장...’
글 kin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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