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주위를 정리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기억해서는 안될 추억들... 아프니깐...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아프지 말아야 하니깐...
혼자한 오랜 사랑을 마음에서 보내고
아프고 지친 마음을 달래려 옛것들을 정리하다
한상자에 가득찬 옛편지 뭉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군에서 받은 위문 편지, 꿈 많았던 시절 주고 받았던 친구들 편지,
오랜 외국 생활로 먼 이국땅에서 보낸 그리운 부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아버지의 편지
그 많은 편지들속에 유독 눈에 띄는 편지 뭉치가 있었습니다.
끈으로 묶여 따로 구별되어 있는 백여통 남짓한 편지 뭉치.
'아... 그래. 그 소녀...'
그 소녀를 알게 된건 제 나이 이십대 중반때쯤이였습니다.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연스레 알게된 대학 초년생이였던 소녀.
유달리 수줍음이 많았던 그 소녀는 친구들과는 달리 술자리가 끝날때까지 고개 한번 들지 않았던걸로 기억됩니다.
작별 인사를 나눈 우리들은 제각기 갈길로 갔고 저 또한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말에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많이도 북적거렸습니다.
시간을 알고 싶어 시계를 보려는 그때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제 어깨를 두드리며
소곤거리듯 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저..저기..요...'
돌아보니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던 그 소녀가 발그레진 얼굴로 서 있었습니다.
저를 잠시 쳐다보더니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제 손에다 종이 쪽지를 쥐어주며
뒤돌아 수줍은 걸음으로 재촉하듯 가는것이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쪽지를 펴보곤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저 학교앞 ㅇㅇ커피숖에서 아르바이트하는데 한번 놀러 오실래요?
커피 한잔 사드릴께요. 괜찮으시다면...
초면에 죄송합니다. 백ㅇㅇ_>
'그리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 그 많은 사람들앞에서 어떻게 쪽지를 줄 생각을 다했을까? 후훗..'
그 소녀의 용기가 가상하기도 했고 나에게 그런 배려를 한다니 고맙기도 해서
며칠 후 친구 한명과 함께 그 소녀가 있는 커피숖에 가보았습니다.
너무나 반갑게 맞이해주던 그 소녀.
그 이후로 우린 가끔 영화관이나 공원을 다니며 친해졌고 말 그대로 오빠,동생사이로
스스럼 없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그 소녀는 저에게 사랑으로 다가오려 했고
예쁜 동생으로만 여겼던 저는 왠지 모를 부담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면 안된다고 달래도 보고 야단도 쳤지만 그 소녀는 막무가내였습니다.
내 앞에서 눈물을 참 많이도 흘렸던 소녀...
그땐 그 눈물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눈물 자국이 선명했던 그 소녀의 사랑고백 편지들...
그땐 그 고백의 서러움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랑한 그녀를 제 마음에서 보내고
혼자만의 사랑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를 겪어본 지금.
그 소녀의 눈물이 저의 눈물이 되어 흘러 내립니다.
모질게 했던 저를 그 소녀가 이해해주기만을 바랍니다.
제가 그녀를 이해했던것처럼...
글 : 아랑
음악 : Naori Uchida (Harp)-'Moon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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