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지나다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가지마다 분홍빛 꽃숭어리를 가득 피워 올린
배롱나무 한 그루를 만났습니다.
진록의 숲들이 뿜어내는 초록 기운에
여간한 꽃들은 그 빛이 다 쇠했건만
보란 듯이 분홍빛 꽃을 달고 선 배롱나무를
무연히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남쪽 땅에서 피어나는
꽃들의 이름에 어두운 것은
고향이 서울인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감출 수 없는 부끄러움은
꽃 이름 하나, 나무 이름 하나에 소홀했던
눈 먼 마음입니다.
내가 배롱나무를 알게 된 것도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삼년 전엔가 친구와 함께 바다를 찾아
땅끝마을에 다녀오던 길이 었습니다.
벌써 기억이 많이 흐려지긴 했으나
아마도 영암의 도갑사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월출산을 내려와 나무 그늘에 쉬고 있는데
절마당 건너 저만치에 나무 한 그루가
팔월의 햇살 아래
분홍빛 꽃숭어리를 가득 피워 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배롱나무와의 첫대면이었습니다.
무궁화, 협죽도와 더불어
여름의 대표적인 꽃으로 불린다는 배롱나무가
목백일홍이란 또 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지요.
7월에서 9월까지 석달을 두고 피는 꽃이어서
목백일홍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배롱나무는
그 이전에도 내 눈에 띄었을 것인데
왜 그때까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인지......
그렇게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로
여름만 오면 배롱나무는 내가 가는 길목마다
환한 꽃송이를 피워 달고 나를 반겼습니다.
비록 한 번 뿌리 내리면
붙박혀서 오가지 못하는 나무라 해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는 대상에겐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함께 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오늘 배롱나무 아래에 서니 갑자기
함께 남행했던 그 친구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 때의 남쪽으로의 여행이 그 친구에겐
이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여행이었기에
다시 친구를 만날 수 없었기에
어쩌면 더욱 그 친구가 보고 싶어졌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리고 보니
배롱나무의 꽃말이
'떠나간 벗을 그리워 함'이네요.....
음악 한 곡 드립니다...
이 곡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주 들었고...
들을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저림으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던 곡입니다...
들려 드리고 싶어서 힘들게 링크를 걸었으니...
간혹... 한번씩이라도 들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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