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족장 - 마이무

2006년 1월 17일의 글,그림

내게는 친동생 같은 남(他)동생 둘이 있다
해주는 것도 없는데 그렇게 형 대접을 한다

둘 다 여자 고등학교 총각 선생님이다

큰 동생은 나랑 4살 터울이고, 작은 동생은 나랑 7살 터울이다
큰 동생이 늘 아래 위를 챙김으로 해서 관계가 아직까지 살갑게 유지되는 것 같다

신기한 것은 우리 모두 대학시절 교생 수업을 가서 알게 되었다는 거다
한달 가량의 교생 시절에 만난 사이가 10여년을 간다는 것은 갸륵한 일이다

이 날은 신년 인사차 두 동생이 집을 찾아왔다

오기 전 큰 동생의 전화 한통이 있었다

" 형님, 오늘은 함 마셔볼랍니다. 오랜만에 형제가 모였는데..그리고 형님
평소에 동생들에게 섭섭했거나 하고 싶었던 말 있었다면 오늘 하세요...저도 할께 좀 있거든요"

작은 동생은 작년에 아버님을 하늘에 잃었다

평소에 지병이 계셨던 것도 아닌데,
갑작스런 일이었다

그때 문상을 갔던 우리는 작은 동생의 어연한 모습에 좀 당황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큰 동생은 이런 작은 동생의 자태에 적잖이 섭섭했던 것 같다

'우리 보다 더 안 슬퍼 보인다는 거였다'

평소에 사회적인 사교성이 좀 부족했던 작은 동생은 좋고 싫음이 분명했고
싫어도 해야 할 일은 잘 안했다

큰 동생은 작은 동생의 이런 저런일들에 대해 이 날  술 기운을 빌어 지적을 좀 해보고자 했던 것 같다

큰 동생이 먼저 왔고, 작은 동생이 10분쯤 뒤에 왔다
우리는 나가서 돼지 갈비를 소주와 함께 먹었다

그리고 들어와서 맥주를 마셨다

북한 개성에서 가져 온 백두산 철쭉술도 마셨다
술이 떨어지자  창고에 있던 먼지쌓인 고량주 두병을 다시 꺼내왔다

작은 동생이 이 날은 제일 많이 마신다

결국 고량주를 완샷하자고 부추기며 홀로 완샷을 연거퍼 한다
맥주도 자기가 거의 다 묵었는데...

그리고는 평소 안하던 얘기도 공손히 손을 모아 했다

"형님...형님은 참...다 포용해줘서 좋아요...스펀지 같은 사람이에요..."

나한테 하는 말이었다
내가 뭘 빨아들인다니..

칭찬 같아서 기분이 좋았고,,그래서...
그윽한 눈빛으로 계속 술을 마셔대는 그를 포용하려 했다

아무래도 나는 좋은 말만 해줘야 하는 분위기가 되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큰 동생도 오히려 작은 동생에게 밀리는 듯 했다
분위기가 엇박자였던 거다

결국 맘에 담아 두었던 얘기를 다 못하고 작은 동생의 날카로운 눈빛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술버릇이 좀 있다...작은 동생이..)

새벽이 오고,
나는 자리를 깔아주었다

큰 동생은 먼저 잠을 잤고,
작은 동생은 냉장고 앞에서 주저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뻗어 버렸다

두 동생은 키가 크고 덩치도 컸다

뻗어 있는 작은 동생을 보면서 문득 '고래'가  생각이 났다

우이도에 밀려온 고래를 보며
이 커다란 몸짓을 어떻게 움직였을까 하고 궁금했었는데

작은 동생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해봤다

움직이지 않는 큰 물체는 굉장히 힘겨워 보인다

낑낑대며 자리로 옮겼다

다음날 아침

아직 잠이 덜 깬 내게 큰 동생이 살포시 다가왔다
작은 동생은 잠깐 밖을 나간 사이였다

뭔가 말 못할 사연 하나를 놓고 장고 끝에 내린 결단인양 입을 연다

"형님..우째 이런일이.."

"와?"

"저 놈이...글쎄.."

"....."

" 아무래도 글쎄..."

"........"

"방에다 오줌을 싼거 같아요.."

" ! "

정말 뜬금 없었다

다 큰 어른이...그것도 몇달전 교육감이 주는 "우수교사"표창장을 받았다고 자랑을 하던 작은 동생이..

방에다 오줌을 쌀 수는 없었다..

현장 검증을 했다

"내가 자고 있는데 머리맡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는 거에요..
그래서 스윽...보니까...저 놈이 뭘 흘리는 거에요...분명히 소리가 흘렀어..."

그리고는 먼지 덮인 책장을 가리키며

"이게 손자국 같아...그 놈이 손을 이렇게 짚고 ... 그렇게 한거 같은데요?"

정말 보니 손가락 자욱이 선명했다
먼지가 많이 쌓이니 증거는 날카로왔다

근데 어디에도 물의 흔적은 없었다

"방이 뜨거우니까 마른거죠..이봐요...자욱은 있자나.. 내 이부 자리 끝에도 좀 묻은것 같아요"

정말 방바닥에는 말라버린 물의 자욱같은게 남아 있었다

"사실, 처음엔 말려 볼까 생각도 했었는데요...뭐...나오는 상태에서 말려봐야 뭐하겠냐 ..싶어 그냥.."

걸레로 한번 스윽 훔치고 코를 대보았다

"찡"...했다

"야...뭐 마이 안샀네...됐다. 난중에 닦으면 돼지...밥이나 묵으러 나가자"

스펀지같은 형이 되기 위해선 이런 멘트쯤은 남겨줘야 했다

뭐시든 포용하고 싶었다...분위기가..

간혹 술 취한 사람들의 무용담중에는
냉장고 문을 열거나 혹은 장롱문을 열고 실례를 무릅쓰는 분들이 계시다는 애기쯤은 들은바가 있기에
냉장고가 아닌것에 축복이라 여겼다

식사를 하면서도 주된 안건은 오줌이었고

작은 동생은 결단코 그런일은 없다고 했다

큰 동생은 교육부에 진정서라도 내야 되는거 아니냐며 흥을 돋꾸었다

"아니..우수교사 표창장 받은 사람은 남의 방에다 오줌을 싸도 되는 겁니까..!!"

그렇게 즐겁게 식사가 끝나고 동생들은 집으로 향했다

이제 나만의 현장검증이 시작 되었다
걸레로 이곳 저곳 흔적을 찾아내며 통쾌해했다

사실 그떄까지만 해도 긴가민가 했었다
흔적이 너무나도 초촐했기 때문에

그래도 참...착하게 샀네
그렇게 맥주를 많이 마셔대고 이 정도면 양반이네..
역시...우수교사야...

이카며 바닥청소를  끝냈다

그리고 나는
컴퓨터를 켰다

뭔가 불안한 출발을 보인다...내 컴퓨터가..

갑자기 시디롬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더니만
모든게 멈췄다

순간 '노란 빛' 하나가 머리를 스친다
직감인것이다...오줌에 관한.

두근거리며
컴퓨터 케이스를 열었다

뚝뚝 떨어지는 옐로워터

오! 한강.

내 컴퓨터가...요강이 되어 있었다

이런...된장같은 사태가..

- 노란 하늘 -

내 마음
구석 어딘가에
뭉게 뭉게

분노가
치밀어 ..

"나쁜 새끼~~~~~~~~~~~~~~!!!"

컴퓨터를 흔들어대니...
어디서 나온 줄기런가..
쏟아지는 노란 빛의 행렬이여

망연자실...
그저 넋놓고 흐르는 물줄기만 바라만 보았다

컴퓨터를 위해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오줌을 닦아내는 일밖에 없었다

걸레에 노란빛이 든다.

웬만큼 말리고
전원을 꽂아보니 불안하지만 나름대로 새출발을 하는것 같다

여전히 시디롬은 잠복중이고, 희한하게도 인터넷은 된다
증상에 대한 검색을 해본다

검색어 : 컴퓨터에 오줌이..

설마 했는데 나왔다
네이버 지식인에, 비록 사람의 그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찾은 결과 : 우리집 개가 컴퓨터 본체에 오줌을 쌌는데요..

내용 :저희집 개가 다리를 들고 누는데 어느날 보니까 본체에 오줌을 쌌더라구요...

답변 : 마르면 크게 상관없습니다.

가슴을 쓸어 내린뒤,
다시 본체를 걸레로 쓸어 내렸다

막막한 시디롬을 분해해보니..
부식이 되어 있었다

냄새에 찌들었는지,,물에 찌들었는지
메인보드에도 이상 징후가 발견이 되곤 한다

지금 나는 너무나 혼란스럽다

왜..
차라리 기냥 냉장고로 가던지..
심플하게 벽에다 대던지..

왜 하필 그 좁은 통로를 지나
무거운 의자를 젖히고, 숨어 있는 컴퓨터 본체 앞으로 걸어가
그대...샀는가.
어?

정신이 말짱혀도 지나기가 어려운 그 통로를..
어?

지금 이 글에도 오줌향이 베여 있는듯 하다

긴장했던 탓에 그날은 일찍 잠이 들었다

지금도 생생한 꿈속의 풍경 하나.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겨울의 새벽녘

문을 열자 낯선 빛 하나가 쏟아진다

새벽의 여명인듯 한데 그 풍경은 온 몸을 굳게 했다

두려울 만치 공허한 풍경

아...흡사 벡신스키의 그림 한점이 펼쳐진 분위기였다

극도의 아름다운 공포...

그 장면을 담아둘려고 방안에서 카메라와 삼각대를 가지고 나오는데

작은 누이가 앞을 막았다

"삼각대와 연결할 카메라 밑둥에 나사를 달라는것이었다"

이 무슨 뜬끔없는 시츄에이션..

나를 이리 저리 가로막으며 나사가 필요하다는 몸부림...!!

결국 그러는 사이  그 여명의 빛은 평범한 아침 풍경으로 바뀌고 있었다

너무도 안타까와..나는 울부 짖었다

"만다꼬 그기 필요한대 지금...!! 어이? 으아아앙~~"

그 울부짖음에 내가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정말 내가 울부짖은 거였다..

꿈에서 깨어난 뒤 그 풍경
기억의 끝자락에 지독스럽게  매달려 본다

노오란 빛..

공허한 환영..

그래...
그것은 오줌빛 환영이었다

지독스럽게 아름다워 두려움에 휩싸이는...

그 기억을 위해 지금 나는 곧장 이렇게 글로 옮겨 놓는다

잠결에 말이다..

행여 이 글이 작은 동생의 흔치 않은 실수에 대한
사생할 폭로가 아니되기를 바란다

뭐 다 쓰놓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니가 참아야 한다

왜냐면..
나는 스펀지같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다 결국 니 오줌까지 스며 들어버린
그런 스펀지 같은 형이니깐...

작은 동생이 그 날 했던 얘기중에..

"교육자는 교육의 기술이 중요한게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해요"

교생때 보았던 '아이들을 정말 사랑해 버리는 마음'이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보는 내가 괜히 좋았다

근데..

오줌빛 환영은 악몽이었을 까나?
너무 좋았는데...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