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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와人 2006-09-04 10:17:21 | 조회 : 2319
제        목   [고븐] '걷기'를 사랑했네





「걷기」를 사랑했네



30대 초반까지 나는 걷기를 싫어하고 달리기는 두려웠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달리기 순서가 돌아오면 나는 거의 공포에 떨었다. 달리기를 하지 않으려고 도망가고 숨기까지 했다.
담임선생님께 발각되어 어쩔 수 없이 등이 떠밀리면 내 딴에는 왼발 오른발을 부지런히 바꾸어가며 속도를 내본다.
그러나 아무리 버둥거려도 땅바닥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악몽처럼 도착해야할 결승점은 아득하기만 했다.
다리가 아프거나 그다지 짧은 것도 아니다.

아이러니한 해프닝은 나의 아버지께 있다.
시골 운동회는 온 동네잔치라서 동민 가운데 흥을 돋우는 사람들이 나타나곤 하는데 나의 아버지가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열아홉에 나를 얻으셨으니 아직 혈기방장 하실 때다.
동네별로 아녀자들 달리기 시합이 벌어지면 이 모퉁이 저 모퉁이에서 술을 얻어마시던 아버지가
어느 새 여자 한복을 뺏어 둘둘 말아 입고 이미 출발선을 떠난 선수들 틈에 잽싸게 끼어드는 것이다.

그것도 벌써 저만치 달려가는 아줌마들을 그 훤칠한 키로 물찬제비처럼 제치고 일등으로 골인을 한다.
응원석이며 구경꾼들은 박장대소하고 골인 테이프를 잡고 있던 고학년들도 아버지를 보고 웃거니 붙잡거니
열외 일등으로 무슨 상품을 안겨준 것 같다.

아버지는 그렇게 잘 뛰었는데 내가 달리기를 너무 못하는 것은 그러면 엄마를 닮아서인가.
아니면 어린 나이 매사에 목표도 경쟁심도 없던 내 성격 탓인가.



결혼을 하고 시댁 식구들과 야유회를 가거나 산소를 찾을 때면 나는 거의 초죽음이 되었다.
고향 풍경이 좋다고 몇 킬로 되는 마을까지 걸어가자고 할 때면 어린 조카들에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걷기 싫어서 발이 아픈지 발이 아파서 걷기 싫은지 도무지 조금만 걸어도 발바닥에 불이 나곤 하였다.
남편은 내가 평발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걷기를 싫어하는데 등산을 이해할 리 만무하다. 이해는커녕 오해만 자욱하였다.
아무 볼 것 없는 산꼭대기를 향해 땀 흘리며 기어올랐다가 빈 몸으로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는 냉소적으로 쳐다보았다.

30대 초반까지 걷기와 달리기, 등산 등 발과 다리의 움직임에 대한 생각은 그러했는데 달리 생각하면
그것은 내가 그 나이에도 관조의 눈빛이나 사유의 깊이가 없는 무지몽매에 가까웠음이 더 맞겠다.


발바닥만이 감지할 수 있는 특별한 감각,
다리운동이 심신에 미치는 막대하고도 소중한 영향력,
걷기를 통한 풍경과 세상읽기 그리고 교당에 무릎을 꿇고 앉거나 엎드려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사람과 같이
걷는 자는 두 발을 움직여 어디론가 내닫는 것이 곧 종교행위와 같음을 몽매시절 이후에 나는 알게 되었다.



이후의 시절은 나의 르네상스에 가까웠다.
물꼬를 튼 것은 자신의 직업을 산책가라고 했던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읽기와,
지금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무슨 책에서 헬스클럽을 다니고 수많은 운동기구를 사용해 운동을 해봤으나
걷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걷는데 돈을 내라면 자기는 그러겠다, 던 어느 의사의 글 이었다.
물론 당시에 IMF가 덮치고 내 가정의 현실도 암흑이어서 움직이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졸다가 그대로 얼어붙을 것 같았다.

변화는 멀리서 오고 있었지만 우리는 늦게 감지하고 갑자기 놀라게 된다.



나는 서서히 걷기 시작했다.
우연한 독서 덕분에, 어둠 속에서 졸지 않으려고. 처음엔 겨우 골목을 어정거리거나 야산 초입을 돌아오는 정도였다.
기분이 괜찮았다.

발바닥 눈치를 보며 조금씩 거리를 늘리며 사방 일 이 킬로미터 내외의 미지를 탐사해갔다.
그러나 몽매가 30년 동안 안하던 짓을 하니 발바닥과 발목이 곧바로 저항 했다. 붓고 아프고 뒤틀렸다.
걷는 방법이 잘못된 건지 아침 한 시간 정도를 돌아올 뿐인데 심할 때면 하루 걷고 사흘을 쉬어야하는 꼴이었다.

  
그러나 나의 걷기 즐거움은 점점 커져가서 발을 달래고 다리를 설득하여 다시 나서곤 하였다.
게처럼 옆으로 걷거나 뒷걸음질 걷기는 재미있다.
재미 속에 그때까지 눈 뜨고도 보지 못했던 꽃과 나무를 만나고, 가까이 있어도 늘 멀게 느껴지던 고요한 새벽과 나를 만났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날은 운동화 끈을 더욱 단단히 매었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함도 있지만 그 특별한 날의 산책은 또 아주 근사한 것이기에.
경산 장고산과 남매지는 새벽마다 내가 즐겨 읽는 문고본이었으며, 이사 후에는 남천과 성암산에 중독 되었다.
그곳에도 들꽃과 바람과 새들의 노래가 넘쳤다.

  
조금씩 달려보고도 싶었다.
백 미터, 이 백 미터. 그래, 아무렴 어찌 그까짓 것을 못한단 말인가!
그 순간만은 더 이상의 생각도 암흑 속 졸음에 대한 고뇌도 없었다.
그러나 며칠 뜀박질을 하니 급기야 허벅지와 허리까지 아프고 제대로 누워 잘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다리와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병원에 갔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나 보자.
별 말없이 한의사는 침을 놓았다. 정형외과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고 물리치료를 해주었다.
그때마다 나는 절뚝거리며 병원을 나왔는데 불현듯 자각이 일었다. 나의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약간 길다는 것을.

원인을 알면 가벼운 두려움은 다스리기 쉬운 법이다.



통증이 불쾌하지 않을 만큼 시간을 조절하며 나는 다시 걷고 조금씩 뛰었다.
왼쪽 발바닥을 좀 더 세게 콱콱 구르며 걸으면 다리 길이가 같아질까 실험해보기도 했다.

그럭저럭 아픔은 점차 무감각해지고 걷기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져 갔다.
발가락에 물집이 맺히기는 했으나 지리산 노고단에서 산자락 주막까지 걸었다.

쉬엄쉬엄 거닐던 남천 변에서 5년 만에 이 킬로미터 정도를 뛸 수 있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운동회에 나가 엄마 달리기 일등을 했다.
사 십 나이에 무엇을 더 바라랴! 5년이면 마라토너가 되고도 남았겠지만 나는 목표를 향한 것이 아니라
걷는 즐거움의 확장을 지나왔다.
그리고 걷기를 통해 심신의 군살을 몇 근이나마 도려낼 수 있었다.

  
알다시피 걷기는 동물 존재의 원초적 이동 수단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간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영토도 개척해가는 것이다.

걷기 속에 얻어지는 재산은 삶의 가치를 새롭고 풍요롭게 한다. 그러한 부를 축적한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
걷기가 불가능한 사람일지라도 분명 걷고픈 욕구는 끊이지 않을 것이라 짐작되며 독서나 대화, 타인의 걷기를 통해
더 먼 곳으로 여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나 주인을 기다리는 휠체어는 노벨평화상 후부로 마땅하다.  



김립(金笠)이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떠돈 기록은 짚신의 공로보다 삿갓을 강조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특정인이 과도한 거리를 걸어서 가면 앵글은 그 발바닥에 초점을 맞춘다.
과거에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했다.
지금 문명 질주의 시대에는 ‘걷기’가 투쟁이나 저항의 으뜸 종목이 된 것 같다.


불멸의 원시적인 것은 펜과 문명보다 강하다. 나를 제발 그냥 놔두시오! 라고 애원하던 ‘좀머씨’는 이해되지만
그럼에도 그가 길바닥만 쳐다보지 말고 고개 들어 먼 곳을 좀 바라보며 걸었더라면 싶은 아쉬움이 남았다.

프랑스 지식인 다비드 르 브르통이 쓰고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걷기예찬」은 황홀하게 읽히는 책이다.
희고 검은 돌 두 개로 무한광대 길을 열어가는 바둑처럼, 하나의 작은 씨앗이 우주를 품고 있듯이
오로지 두 가닥 발을 움직여 나아가는 행위 속에 존재로서의 희열과 충만함이 깃들어 있음을 고급스런 필치로 끌어당긴다.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놓는 고즈넉한 방법이다.
그것은 오직 순간의 떨림 속에서만 있는 내면의 광맥에 닿음으로써…사물의 본래 의미와 가치를 새로이 일깨워주는
인식의 한 방식이며 세상만사의 제 맛을 되찾아 즐기기 위한 보람 있는 우회적 수단이다.”


책에는 여러 걷기 예찬자들의 놀라운 경험담이 기록되어 있는데
언젠가 읽은,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와의 불화로 헤어져 홀로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던 도보여행기도 좋았던 것 같다.
철학의 바다를 이루었다고 소문난 칸트는 그 업적보다 평생 산책을 했다는 사실이 더 역사적이고 위대해 보인다.

여러모로 진통제 같은 걷기를 알고 난 뒤부터 며칠간 집을 떠날 때면 나는 반드시 운동화와 운동복을 챙긴다.
몇 년 전 한겨울, 서울 보건복지부 연수원에서 3주 연수를 받는 동안 나는 거의 매일 산책을 나갔다.
연수생들과 늦은 밤 까지 모임을 갖거나 음주가무를 해도 그 짧은 기간 낯선 곳의 풍경과 바람을 즐기기 위해
수위 아저씨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새벽에는 월장을 하곤 했다.
연수원 뒤편의 초등학교 운동장, 난생 처음 깃들어보는 천마산, 아차산, 중랑천은 그사이 다정한 풍경이 되었다.


동생 결혼식 일로 역시 처음 일본을 가는데 내가 운동화를 챙겨 넣지 않을 리 만무하다.
이슬비 내리는 새벽, 호수에 벚꽃가지가 휘늘어지고 동백꽃은 굵고 붉은 눈물방울처럼 떨어져 쌓인 동경 기타마루 공원에서의 산책은
무척 설레었다. 숙소 지붕마다 김이 오르는 니꼬 온천의 새벽은 넉넉한 평온이 깃든 마을 같았다.
만에 하나 깜빡해서 운동화를 가져가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일본에서 운동화를 사 신고 산책했을 것이다.


중요한 일 때문에 나는 최근 7개월 동안 문맹이요 금족 하였다.
여유가 조금 생기니 다시 바깥바람이 그리웠다. 바쁘고 힘든 하루를 마치고 밤 11시를 넘어서는 심야 산책을 시작했다.
집 가까이에 강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의 요소다. 물이 적어서 아쉽지만 백로와 여러 물새들의 터를 나는 기꺼이 강이라 부른다.
딸아이도 곧잘 따라 나와서 함께 걷는다.
강물 위에는 강변 상점들의 네온 불빛이 아른거리고 여름 풀벌레들의 세레나데가 강 숲을 어루만지며 밤을 지새울 듯 하다.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게 남은 것 같다.
머지않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애틋한 우정과 연민을 나누던 사람들과도 이별하고
나의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벗 하고픈 것이 있다면 직립보행이다.

아! 걸어서 저 하늘까지 갈거나.

누가 그랬다. 신(神)들도 걸으면서 대화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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