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푸와족(poowa)의 세상입니다....among here


Title :  남산에서 횡설수설
Name :
 프리 2004-07-19 00:53:29, Hit : 1108 



서울은 지형적으로 참 아름다운 도시이다.
병풍처럼 둘러선 북한산(예전에는 삼각산이라 불렀다지? 맞나?)과
조금 뒤에서 병풍을 거들고 있는 도봉산의 바위들
한쪽 옆에 수호병처럼 서 있는 수락산과 불암산..
그리고 그 앞에 올망졸망 북악과 인왕
그들을 마주보는 남산...

남산 너머에는 도도하게 흐르는 한강이 있고
한강을 건너면 다시 산자락이 이어지고 우뚝 솟은
관악과 청계산이 멀리서 서울을 감싸 안고 있다.

서울은 그래서 푸르다.


정말이지 모처럼 맑디 맑은 서울을 만난 오늘은 망원경으로
처음 서울로 유학와서 1년정도 머물렀던 안국동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언제보아도 멋스러운 한옥의 기와지붕들이 여전히 있었다.

그 안에서 보냈던 1년
내게는 삶의 목표를 정하고 과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장 갈등이 많았던 시절이기도 했는데.. 덧붙여서
새롭게 겪게되는 인간관계의 복잡성 때문에 머리가 터져나가기 일보직전에 이르기도 했고
그와중에 어설프게 연애라는 걸 하면서
그게 참 나랑은 적성에 안맞는다는 결론을 역시 어설프게 내리기도 했다.

가을 들어서는 뭔가 결론을 내야된다는 강박에 시달려
겨울방학에 나를 본 부모님이 병원부터 데리고 갈 정도로 체중이 줄기도 했었다..

............

그렇게 고민을 하고도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나의 용렬함과 우유부단함은
언제나 마찬가지인듯하다..
용기가 없는 새가슴이라
사소한 일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데는 참으로 빠르지만
정작 인생의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만 하다가 끝내버리기 일쑤니까..









안국동 양쪽 옆으로 보이는 경복궁과 창덕궁(비원이라는 일제의 이름이 더 익숙한 곳..)..
경복궁은 그 앞 종로와 을지로 명동 일대에 들어선 고층 건물군 덕분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뒤에 있는 청와대만이 그림처럼 앉아 있을 뿐..

창덕궁의 푸른 숲은
태풍이 찌든 공해와 먼지까지 이끌고 가버려
참으로 진초록의 제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아주 어릴때 이모부 손을 잡고 갔던 기억 이외에
철이 들어 그곳에 간 기억이 없다..

현대적인 디자인을 뽐내는 높은 건물군들이 별반
이렇다할 전체적인 모양새도 없이
우후죽순처럼 솟아 있는 도시의 한켠에
진초록을 뿜어내는 그 모습이 조금은 애처로와 보였다.
저 진초록 역시
내일만 되어도 뿌연 스모그 속에 잦아들어
다시금 가뿐 숨을 몰아쉬게 되겠지..


반대쪽으로 돌아서 보니
멀리 반짝이는 호수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서해바다 아닌가....

바다가 공중에 떠 있다..

이렇게 보니
볼록하게 둥근 지구가 아니라
오목하게 둥근 지구 같다..
그 오목한 가장자리에 서해바다가 있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호수를 보는 듯한 느낌에..
잠시
내가 꿈 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신기루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자서 한 실없는 생각에 빙긋 웃고 말았다..




내려다 보니 아무것도 아니다..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값이 너무나 비싸
이제는 아무나 살 수도 없다는 강남의 아파트 단지도
그저 멋진 지형을 이루는 서울과 그 외곽의 경관을 망가뜨린 장본인일뿐...

그러니..
신이 계셔서
이 아등바등 살아가는 인간세계를 굽어보시면
얼마나 모든 것이 부질없고 하찮아 보일것인가..

저 도시 어느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대폿집 아주머니와 돈이 모자라는 취객의 실갱이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을 여기 남산..
그리 높지도 않은 이곳에서도
이렇게 오만방자해지고
세상 고뇌도 벗어버릴것 같은 충만함에 가슴 떨려하는데..
더 높은 곳에 계시는 신은
그저..
세상이 아름다워만 보이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한영애님은
잠자는 하늘님께 어서 일어나 이 세상 조율 한번 해달라고 노래했을까?


아름드리가 되지 못할만큼 공해속에 허덕이면서도
제 몸을 지탱하려 애쓰는 작은 나무들이 버텨주는 남산위에서
나는 내가 순간순간 가장 절망적이고 비참하다고 여기는 일들이
얼마나 하잘것이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 속에서
잠시 넉넉하고 자유롭고
행복해졌다..


피식..
내일이면 다시 악다구니 속으로 들어갈 꺼면서
사람이 원래 이런건지..
아님 내가 좀 단순한건지...


뭐..
어찌되었다 해도 상관없다..
태풍이 지나가서 오랫만에 시야가 트인 남산에서
잠시 느낀 넉넉함의 약발이 오래오래 가길 기대해 보자...



                                                                         - 2002년 9월 1일




♬ 들리는 음악은 김영동의 바람소리 입니다.








  벗꽃지다 2004-07-19 13:48:40      
서울에 관한 얘기라면 항상 귀가 솔깃해지는 나.......!!

구한말 이전에 서울에 청계천 같은 실개천이 300개가 넘었다고 하데요...

상상 해보았죠...골목과 골목 사이에 개천이 흐르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 사이로 여러나무들이 장관을 이룰 그모습.......

다행이 청개천이 복원 되고 있지만.......
그래도 발전이라는 욕망에 의해 사라져 가는 것들이 너무 안타깝네요..

대학로 아래쪽 이화동4거리에 직물점이 많은거 아시죠?
대학로......그러니까 동숭동과 명륜동을 사이에 두는 도로......
예전(구한말이전)에 이도로가 물길(개천) 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래서, 한강으로 부터 나룻배가 이물길을 타고 들어오면서 이화동 자리가 직물점이
많이 자리 잡았다더군요......

참 신기한건......아직도 이화동에 직물도매점이 많다는겁니다.....물리적인 힘에 의해
도시가 갈기갈기 찢기면서도 꿋꿋하게 그 명맥을 이어가는 것들을 보면
행정적이든 이익을 위해서든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죠..

제가 자주가는곳이 몇군대 있어여...서울역에서 남대문,종로 피막골,대학로,인사동,
그리고 조선 시대때 중국상인들이나 서신들이 서울로 들어오기전에 하룻밤 묵었던
홍제동....

이동네들에서 아직도 옛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는걸 발견하면 아주 흥미로워요~~
종로 피막골은 술집이 많죠...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종로대로는 아무나 걸어다닐수 없는 길이죠...행여 임금님이
지나가시면 머리를 쪼아리고 해서.....느리게 가는 시간에 장사도 못하니...

바로 피막골 그좁은 도로로...상인들 왕래 했답니다......
지금도 그 피막골 마치 6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직종만 다를뿐 변하지 않죠...
  아랑 2004-07-20 22:15:38      
서울이란 곳... 좋구나...

물론 프리님의 서울이겠지요.

고운 프리님 마음속의 서울이라 그렇겠지요...

여기 부산도 좋아요... 그래서 저도 곱답니다.. ㅎㅎ ^^;

잘 지내시죠?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글 계속 쭈~욱 부탁드립니다.
  프리 2004-07-22 00:25:10      
와...
벗꽃님의 말씀 잘 기억해두었다가
서울 도심을 산책할때.. 상상해보아야겠어요...
그 옛날 도읍지였던 그곳의 모습을 말이에요..

이건 비밀인데요...
음...
제가 서울생활한지 10년쯤 되던해인가..
정말 예쁜 서울인데.. 도시개발이 여엉 제맘에 안들게 되어 있어서..
야심차게 건축공학과로 진학해보겠다고
정석책 다시 사서 잠시 공부했던 적이 있더랍니다..
결과는 뭐..
6개월도 못되서 포기하고 말았어요..
왜그리 공부해야하는 과목이 많은지...
그리고 왜그리 머리는 안돌아가는지...

근데..
명박이 아저씨가 서울 도심을 아주 뒤집어놓고 계시네요...
더불어.. 제 추억이 사라지는 곳도 많아지네요...



고운 아랑님...
잘 지낸답니다...

제게도 부산은 고운 추억이 많은 고장이랍니다..

수정동(맞나?)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던 부산항과 부산역..
버스를 타고 멀미를 하면서 찾아갔던 범어사와 금정산..
바람에 새로 산 모자를 빼앗겨 버린 태종대..
사랑의 추억까지 마셔버렸던 달맞이 고개의 조그만 카페..
밤새 내리는 비에 몸살을 하던 해운대 바다..
화장실에 예쁜 글을 적어 걸어두었던 것이 인상적인 광한리의 어떤 횟집..
부산역 근처 뒷골목 허름한 술집 이층방에서 먹었던
짜디짠 감자탕과 쏘주..
그리고..
어느 뒷골목에서 하얗게 빛나던 카페 푸와 불빛......

또 그리고...
아랑님의 고운 미소....

아랑님.. 잘 지내시죠? ^^
  길.. 2004-07-27 19:24:54      
프리님의 추억의 뒤안길을 따라 가다가 만난
금정산과 범어사가 반겨 주네요

다음에 범어사 근처로 오실 길 있으시면
저희 집에도 들리시죠^^*
  베르베르 2004-07-30 19:36:29      
아...명상음악....옴!!! (ㅡ0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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